1. 후린과 후오르, 에레이니온이 함께 노는 것을 보고 저 애들이 자랄 때면 하도르가 곁에 없을 걸 생각하는 핀골핀
'이거 드릴게요.' 후린은 짐짓 어설픈 자세로 왕자에게 예를 갖추며(그러다가 개울로 넘어질 뻔 했지만) 신기한 돌맹이를 에레이니온에게 건냈고 에레이니온은 여전히 휘둥그레한 눈으로 그것을 받았다.
신기한 돌맹이를 에레이니온이 싱긋 웃으며 이리 살펴보고 저리 살펴보다가 핀골핀에게 달려오는 동안 후오르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형을 바라봤다. '형아. 나는..? 나도 갖고 싶어.' '어..? 어... 그러니까.. 자..잠깐만 기다려봐'
그 모습에 핀골핀은 싱긋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데, 마치 어린 시절 자신에게 찾아왔던 하도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후린의 모습은 핀골핀이 하도르를 처음 봤을 나이보다 더 어리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설프고 서투르고 어리기만 했던 소년은 요정에게 있어서 찰나의 순간동안 빠르게 자라났고 누구보다 강건한 군주로 그의 옆에 있었다. 저 소년들도, 하도르의 아들 갈도르도, 그 때처럼 빠르게 자랄 것이다. 그리고..
"로린돌."
"예, 폐하."
"아직은 멀었겠지."
에레이니온은 곧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아직 저 먼 발치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노는 중이었다. 개울소리와 거리때문에 조용히 말한다면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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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핀골핀의 회상으로 핀로드가 베오르를 소개시켜 주고, 그가 죽고 난뒤 슬픔 가득한 표정으로 회의에 참석한 핀로드를 위로해주는 걸 쓰고 싶었는데.. 전자는 쓰고 후자는 못 썼다.
"놀도르의 대왕이시자 존경하는 숙부님.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허락하신다면 저의 가신 중 한 명을 폐하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핀로드가 소개한 이는 에다인 중 가장 먼저 엘다르의 봉신이 될 것을 자처한 베오르였다. 그의 모습은 첫 인상부터 엘다르와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당시의 베오르는 이미 노년의 모습이었다. 핀골핀 또한 아라단을 잘 알고 지냈으나 아라단보다도 훨씬 노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림없이 핀골핀에게 예를 갖추었고 그 날 세 사람은 함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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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얼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벌써부터 실없는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훈훈한 개그로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망함. 하도르가 에레이니온에게 어설프게 예의갖추는 후린을 보고 피식 웃자 어린 후린 대신해서 역공해주는 핀골핀.
"너무 그렇게 웃지 말거라. 넌 저거보다 더 어설펐었다."
"네?"
"에레이니온, 이제 그만 가자. 네 아버지가 또 사고를 쳐놨을지 모르니 빨리 다시 가봐야겠다."
당혹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하도르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다시 잔잔하게 미소를 띈 채 핀골핀은 자신의 어린 손자를 불렀다. 익숙하고 다정하게 자신을 부르는 조부의 목소리에 에레이니온은 신나서 달려왔고, 후린도 자신의 어린 동생의 손을 꼭 붙잡고 그 뒤를 따라 조부의 곁으로 다가왔다. 핀골핀은 무릎을 꿇고 앉아 후린과 후오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본 적은 없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하도르의 어린 시절도 꼭 이렇지 않았을까 떠올리게 만들 만큼, 하도르를 닮은 손자들이었다.
"저기, 폐하.. 지금 후린이 10살이고, 제가 폐하를 처음 뵈었을 때가 15살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거보다 어설프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건 네 생각이고. 내가 보기엔 지금 후린이 훨씬 나은 것 같구나."
패닉에 빠진 하도르를 일부러 무시하면서 곧 몸을 일으켜 한 손으로는 손자의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후린의 손을 잡았다. 핀골핀은 하도르가 자신의 농담을 절대 농담으로 안 받아들인다는 것을 아직 몰랐다.
"너희 집에 말을 메여놨으니 우선 함께 가자꾸나. 즐겁게 놀았느냐?"
"네~"
"그럼 집에 가면서는..."
핀골핀은 잠시 자신의 손자와 후린형제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하도르를 바라보았다. 근엄한 왕의 표정에 은근한 장난끼가 어리는 것이.. 하도르는 진심으로 자기 착각이라 믿고 싶었다. 그저 잠시 왕의 장남인 핀곤왕자가 떠올랐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한 짐작은 비껴가는 적이 없었다.
"너희 할아버지 어렸을 적 있었던 얘기를 해주마."
"네? 폐하? 잠시만요!?"
"우와!! 해주세요. 해주세요."
또래 아이들 셋은 곧 핀골핀의 팔을 잡아당겼고, 핀골핀은 하늘을 바라보며 무슨 이야기부터 해줄까 말을 골랐다.
"저기.. 폐하? 무슨 얘기 하시려는건지 저한테 먼저..."
"아. 그러고보니, 너희 할아버지가 처음 여기 왔을때 말이다.."
도르-로민의 평화로운 하늘에 괴로운 하도르의 비명 만이 가득찼다.
4. 에필로그: 핀골핀이 장난친 건데 "어릴 적에 넌 후린보다 어설펐음^^" 이라는 말에 쇼크먹고 밤잠 못자는 하도르와 같이 못자는 길디스.
"말도 안돼.. 내가.. 처음왔을 때.. 지금 후린보다 인사가 어설펐대.. 내가 폐하 처음 뵌게 15살이고, 후린이 10살인데.. 아.. 창피해. 민망해. 폐하랑 전하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여보, 당신 안 잘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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